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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을 맞아 재개관한 안중근의사기념관 ©김종성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서울의 명소 공원 가운데 하나인 남산공원에는 여러 볼거리, 즐길 거리 외에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도 있다. 그곳은 바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이다. 꽃피는 3월 남산에 올라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올해는 일제가 강제한 을사늑약이 있었던 해로부터 120주년이 되는 해다. 1905년 을사년 당시 나라에 망조가 들고 으스스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 사이에 을사년이 변형된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이때 나왔다고 한다.
삼일절을 맞아 재개관을 하면서 아이들과 청년들도 관람하기 쉽도록 대형 화면의 영상관이 여러 개 생겨나 발길이 절로 머물렀다. 특히 중국 뤼순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재판 장면은 뮤지컬 영화를 보는 듯 현장감 있게 연출되어 인상적이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그중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추천 코스가 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5번 출구)에서 만나는 남대문시장 구경을 하며 걷다가, 시장 7번 게이트로 나오면 10분 거리에 남산공원 입구가 나온다.
삼일절을 맞아 재개관을 하면서 아이들과 청년들도 관람하기 쉽도록 대형 화면의 영상관이 여러 개 생겨나 발길이 절로 머물렀다. 특히 중국 뤼순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재판 장면은 뮤지컬 영화를 보는 듯 현장감 있게 연출되어 인상적이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누리집을 참고하면 된다. 그중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 추천 코스가 있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5번 출구)에서 만나는 남대문시장 구경을 하며 걷다가, 시장 7번 게이트로 나오면 10분 거리에 남산공원 입구가 나온다.

이토를 저격하고 "코레아 우라!"를 외치는 안중근 의사 동상 ©김종성

안중근의 어록이 새겨진 여러 비석 ©김종성
한양도성 성벽을 따라 언덕을 오르다 보면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태극기를 꺼내든 당당한 모습의 안중근(1879~1910) 의사 동상이 여행자를 맞는다. 저격 직후 러시아 헌병들이 덮쳐 넘어졌던 안 의사는 곧장 다시 일어나 힘찬 목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하고 순순히 체포되었다는 안내 글을 읽고 나니 안중근 의사 동상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일컫는 소설가 김훈의 <하얼빈>은 청년 안중근을 가장 잘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대학 시절에 안중근 의사의 심문 조서를 읽고 오랫동안 안중근의 청년 시절로부터의 짧고 강렬한 생애를 소설로 쓰고 싶은 꿈을 품어 왔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리기보다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을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가기 전 한 번쯤 꼭 읽어보길 권한다.
동상 주변엔 노거수 느티나무들이 호위하듯 지켜선 가운데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비석들이 눈길을 끈다. 안 의사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썼다는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일컫는 소설가 김훈의 <하얼빈>은 청년 안중근을 가장 잘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대학 시절에 안중근 의사의 심문 조서를 읽고 오랫동안 안중근의 청년 시절로부터의 짧고 강렬한 생애를 소설로 쓰고 싶은 꿈을 품어 왔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리기보다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을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가기 전 한 번쯤 꼭 읽어보길 권한다.
동상 주변엔 노거수 느티나무들이 호위하듯 지켜선 가운데 안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비석들이 눈길을 끈다. 안 의사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썼다는 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이다.

12개의 의미 있는 기둥으로 이뤄진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d의사기념관 누리집

재개관을 하며 1~3전시실의 그래픽을 전면 교체했다. ©김종성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이채로운 외관을 한 유리 상자 건물로 안중근 의사와 독립운동가 12명이 함께한 단지동맹을 상징하는 12기둥 형태의 건물로 지어졌다. 12개의 육중한 기둥은 12명 동지들의 위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단지동맹(斷指同盟)은 동지들과 함께 각자의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그 피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한 일이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도 색다르다. 흔히 기념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거창한 입구 대신 건물을 빙 둘러 돌아가게 되어 있다.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서울특별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시물을 관람하다 보니 안중근 가문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뜻하는 말로, 사회 고위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의미한다.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도 색다르다. 흔히 기념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거창한 입구 대신 건물을 빙 둘러 돌아가게 되어 있다.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서울특별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시물을 관람하다 보니 안중근 가문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어로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를 뜻하는 말로, 사회 고위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의미한다.

마음을 경건하게 하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태극기 ©김종성
안중근 의사 집안은 고려 말 대유학자 안향의 후예로 조부는 진해현감, 부친은 소과에 합격한 진사로 학자로 명망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황해도 일대에서 이름난 부자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항일 독립운동의 명가로 무려 15명이 독립운동 공로로 서훈을 받았다. 특정 가문의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례는 없지 않으나 10명이 넘는 유공자를 배출한 것은 안 의사 가문이 유일하다. 안 의사 가문은 모두 합하면 40여 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집안, 어느 사람이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인가 보다. 기념관에는 나와 있지 않은 아픈 이야기다.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은 안 의사 순국 뒤 이산과 유랑을 거듭하며 온갖 고생을 한다. 결국 일제의 회유를 받은 아들(준생)과 딸(현생)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친일 행각을 하게 되고 민족반역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집안, 어느 사람이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인가 보다. 기념관에는 나와 있지 않은 아픈 이야기다. 안중근 의사의 가족들은 안 의사 순국 뒤 이산과 유랑을 거듭하며 온갖 고생을 한다. 결국 일제의 회유를 받은 아들(준생)과 딸(현생)은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친일 행각을 하게 되고 민족반역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실감나는 안중근 의사 재판 현장 동영상 ©김종성
입구 로비에는 흰색 명주 옷차림의 안중근 의사 좌상이 있고, 뒤에는 안 의사가 손가락을 잘라 피로 쓴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가 걸려 있어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태극을 중심으로 건곤감리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는 ‘大韓獨立(대한독립)’이라는 붉은 글씨의 네 글자가 선명하다.
기념관 내부 3개의 상설 전시실에 안중근 의사의 일생이 소개돼 있다. 안 의사의 의거 과정을 자료와 사진, 동영상으로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과 뤼순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을 묘사한 동영상이었다. 법정 재판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생생하게 재연해 놓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안 의사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궁금했던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주는 안중근 의사와의 만남 AI 코너도 흥미로웠다. “참배를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하고 질문을 하자 용산구 효창공원으로 가보라는 답변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효창공원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묻혀 있는 ‘삼의사묘소’가 있다. 그 옆에 비석이 없는 무덤이 안중근 의사 가묘다. 가묘(假墓)란 유해가 매장되지 않은 임시 묘라는 의미다. 안 의사의 시신은 가족의 필사적인 항의에도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일제가 비밀리에 안장해 버렸다. 안 의사가 묻힌 곳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아직 안 의사의 유해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기념관 내부 3개의 상설 전시실에 안중근 의사의 일생이 소개돼 있다. 안 의사의 의거 과정을 자료와 사진, 동영상으로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장면과 뤼순 법정에서의 재판 과정을 묘사한 동영상이었다. 법정 재판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생생하게 재연해 놓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안 의사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궁금했던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주는 안중근 의사와의 만남 AI 코너도 흥미로웠다. “참배를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하고 질문을 하자 용산구 효창공원으로 가보라는 답변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효창공원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묻혀 있는 ‘삼의사묘소’가 있다. 그 옆에 비석이 없는 무덤이 안중근 의사 가묘다. 가묘(假墓)란 유해가 매장되지 않은 임시 묘라는 의미다. 안 의사의 시신은 가족의 필사적인 항의에도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일제가 비밀리에 안장해 버렸다. 안 의사가 묻힌 곳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아직 안 의사의 유해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곁에 자리하고 있는 한양도성유적전시관 ©김종성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전시가 아닌 공간 자체로 순국선열을 느낄 수 있는 조금은 다른 기념관이기도 하다. 기념관을 평지가 아닌 산 중턱에 지은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 일대는 일제 식민 지배의 상징으로 남산에 세웠던 조선신궁(朝鮮神宮)이 있던 자리다. 경복궁을 완전히 가린 채 절대 권력의 자리를 차지한 조선총독부청사와 더불어 공간적으로 경성(서울) 전역을 위압하면서 종교사상적 통제와 지배를 위한 상징 공간이었다. 당시 사진을 보니 남산의 대단위 지역에 세워진 큰 신사였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이어지는 남산 한양도성 성곽길 ©김종성
이곳은 서울 일대가 바라다보이는 명당으로 조선시대 한양도성 성벽이 지나고, 나라에서 제례나 기우제 등을 지냈던 국사당(國師堂)이 있었다.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남산 한양도성 성벽은 상당 부분 파괴되었고, 국사당은 일제에 의해 쫓겨나 현재 인왕산 기슭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야외에 있는 ‘한양도성유적전시관’에 조선시대 남산에 지은 한양도성 성벽과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 방공호 등의 흔적과 사진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 위치 : 서울시 중구 소월로 91
○ 운영시간 : 3~10월 10:00~18:00, 11~2월 10:00~17:00
○ 휴무 : 월요일, 1월 1일, 설날(당일), 추석(당일), 근로자의날
○ 입장료 : 무료(100명 이상 단체의 경우 사전 예약 필수)
○ 누리집
○ 문의 : 02-3789-1016
○ 운영시간 : 3~10월 10:00~18:00, 11~2월 10:00~17:00
○ 휴무 : 월요일, 1월 1일, 설날(당일), 추석(당일), 근로자의날
○ 입장료 : 무료(100명 이상 단체의 경우 사전 예약 필수)
○ 누리집
○ 문의 : 02-3789-1016
출처:서울특별시,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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