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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가 열리고 있다. ©이선미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제목도 낯선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 중이다. 서소문본관에서 3월 30일까지 이어지는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이다. 이 전시를 3.1절과 관련해 언급하는 것은 하와이와 일제강점기 우리 조상들의 삶의 궤적 때문이다.

전시는 3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이선미
바람이 좀 거세게 불었다. 잔뜩 웅크리게 되는 날이었지만 미술관에는 의외로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전시의 중심에 있는 김성환 작가의 ‘표해록’ 비디오 작품이 상영되는 시간이어서 부지런히 3층 전시실부터 찾았다. ‘머리는 머리의 부분’이 상영되고 있었다. 작품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와 3시에 볼 수 있는데 2회 연속 상영된다.
독특하게 놓인 좌석에 관람 중인 시민들이 진지했다. ‘단발령’을 기억나게 하는 ‘머리는 머리의 부분’은 한인 이민자의 행로에 겹치는 많은 사람들의 행보를 쫓아간다. 당시 하와이에는 중국인과 일본인들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 하와이어와 북경어로 이어지는 영화는 ‘땅을 잃은’ 하와이 사람들과 곳곳에서 떠나온 이방인들이 섞이지 못한 채 살아가던 당시 사회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독특하게 놓인 좌석에 관람 중인 시민들이 진지했다. ‘단발령’을 기억나게 하는 ‘머리는 머리의 부분’은 한인 이민자의 행로에 겹치는 많은 사람들의 행보를 쫓아간다. 당시 하와이에는 중국인과 일본인들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어와 영어, 하와이어와 북경어로 이어지는 영화는 ‘땅을 잃은’ 하와이 사람들과 곳곳에서 떠나온 이방인들이 섞이지 못한 채 살아가던 당시 사회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3층 전시실에서 전시기간 중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표해록’의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이 상영된다. ©이선미
‘표해록’의 두 번째 작품인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양무용을 배웠다는 배구자의 춤이 하와이에서 전해지고 있는 풍경과 만난다. 하와이로 이주한 배구자의 동생 배한라로부터 춤을 배워 이제 다양한 사람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있는 메리 조 프레실리에게 작가도 춤을 배운다. 미국으로 향하는 경유지이자 먹고 살 길을 찾아 정착했던 한국인들의 정서가 하와이에 뿌리내리고 있는 풍경이다.

한국 전통춤이 하와이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선미
3층 전시실에서는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2007)을 만날 수 있는데 ‘표해록’의 두 작품이 상영될 때는 이 영상을 관람할 수 없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경성, 일본식 발음으로 ‘게이조’를 여행했던 스웨덴 민속지학자 스텐 베리만이 전해주는 우리 과거가 있다. 여기에 2007년 서울을 여행한 김성환 작가의 친구의 시선이 중첩돼 그 시차 안에서 변한 것과 복원된 것, 사라진 것들이 드러난다. 묘한 감정이 오가는 설치물들 사이를 걸었다.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에서는 1937년, 2007년, 2024년을 기준으로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선미
2층 입구에 놓인 전시 안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전시는 우리의 사고와 앎에 관여하는 주요한 매체이고, 그 경험은 저마다 다릅니다. 이러한 속성을 빗대 전시를 ‘앎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이라고 했습니다.”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역시 ‘앎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희망하며 관객을 초대하고 있다.

관람객이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 안내문을 읽고 있다. ©이선미
전시장에 들어서자 한 벽면에 가득 찰 만큼 커다란 글씨와 만났다. 하와이 말 ‘훌리’였다. 하와이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한 훌리는 ‘돌린다, 되돌린다, 전환하다’라는 뜻을 지닌 하와이어로 하와이 문화를 재정립하고 정치, 사회적 억압에 저항했던 하와이 사람들의 정신을 은유한다고 한다. 1970년대에 미국에 자치권을 요구하던 하와이인들의 저항 구호였던 ‘훌리’를 김성환 작가는 ‘전복’, ‘민중’, ‘향토’, ‘개벽’이라고 번역해 전시장 곳곳에 옮겨 놨다.

하와이를 강제 합병한 미국은 하와이어 사용을 금지했다. ‘훌리’는 하와이인들의 저항 구호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선미이선미

하와이 사람들의 정신을 은유하는 ‘훌리’가 뒤집혀진 ‘전복’, ‘민중’ 등으로 전시장에 설치돼 있다. ©이선미
1898년 하와이를 강제로 합병한 미국은 하와이 말을 금지하고 땅을 개발했다.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로가 완공되던 현장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개발이 원주민의 삶에 끼쳐온 영향을 보여준다.

미국에 강제 합병된 하와이에서 주민들의 의지에 반해 개발되고 있는 풍경을 하와이에서 결성된 사진가 그룹이 촬영했다. ©이선미
이 전시실에서 또 눈에 띈 것은 도산 안창호였다. 다섯 구의 설치물로 구성된 ‘몸 콤플렉스’는 20세기 초까지 하와이에 터 잡고 살아온 조연들을 주인공으로 재구성한 하와이의 풍경이자 지도다. 그 하나에 도산의 가족들이 있었다. 1902년 9월 도산 안창호는 아내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인천을 출발해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중에 하와이가 나타났다. 드디어 나타난 미국땅이 너무나 반가워 섬 위의 산이라는 의미의 ‘도산(島山)’이라는 아호를 이때 만들었다고 한다.
아내 이혜련과 그들의 큰아들 안필립도 함께 볼 수 있다.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의 안필립은 20세기 미국에서 극소수였던 아시아계 주요 배우였다.
아내 이혜련과 그들의 큰아들 안필립도 함께 볼 수 있다.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의 안필립은 20세기 미국에서 극소수였던 아시아계 주요 배우였다.

‘몸 콤플렉스’에서 만나는 도산의 가족 ©이선미
조선의 전통춤을 가르친 배한라와 그의 제자 메리 조 프레실리 등 세대와 인종,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이 연결된 지점이었던 하와이는 지리적 위치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다양한 민족과 경계를 넘어 교과서에서는 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하와이라는 땅에서 세대와 인종,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이들이 연결되고 있다. ©이선미
시립미술관 누리집에는 ‘전시 기간 동안 전시 구성이 조금씩 변화할 예정으로, 다회차 관람을 제안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어지는 프로그램들도 있어서 또 방문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제2전시장에 설치된 비디오 작품 ‘무제’(2024)는 전시 기간 중 진행되는 워크숍, 리허설, 움직임 등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아직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으니 누리집을 찾아 신청해도 좋겠다.

도산공원에 도산안창호기념관이 있다. ©이선미
도산공원 안창호 기념관
‘몸 콤플렉스’에서 만난 도산을 만나고 싶어졌다. 1938년 세상을 떠난 도산은 망우리 묘역에 묻혔다가 해방 후 1973년에 아내 이혜련의 유해도 모셔와 도산공원 묘지에 합장됐다.

기념관 입구 포토존의 임시정부 시절 안창호와 김구, 이탁 선생 ©이선미
공원 입구의 기념관에 들어서자 임시정부 시절의 도산과 김구, 이탁이 관람객을 먼저 맞았다. 전시실은 1, 2, 3차 도미와 흥사단 창립, 임시정부 활동과 그가 치른 옥고와 국내활동 등으로 구성돼 있어서 도산의 생애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안창호가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한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날 인삼장수들이 상권을 놓고 상투를 붙잡은 채 싸우는 걸 봤다. 여기서부터 그의 ‘애기애타(愛己愛他)’가 생겼을지 모르겠다. “내가,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고 사랑할 수도 없다.”
그는 서로의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타국 사람들에게 문명인으로 대접받기 위해 모임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는 평생 우리 민족이 자아혁신을 통해 민족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다. 그가 세운 학교들의 목표도 그랬고, 2차 도미 때 창립한 흥사단의 목적도 그렇다.
그는 서로의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타국 사람들에게 문명인으로 대접받기 위해 모임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는 평생 우리 민족이 자아혁신을 통해 민족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다. 그가 세운 학교들의 목표도 그랬고, 2차 도미 때 창립한 흥사단의 목적도 그렇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자”라는 ‘애기애타’(愛己愛他)는 도산의 가르침의 바탕이었다. ©이선미
리버사이드 농장에서 일할 때는 ‘오렌지 한 개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며 스스로 그렇게 했던 도산을 통해 한인들 역시 나무를 상하게 하지 않고 오렌지를 정성스럽게 거두고 주변을 깨끗하게 가꿔나갔다. 한인의 자긍심이 퍼져나간 것이다.

오렌지농장의 도산. 도산은 최초의 ‘코리아타운’ 파차파 캠프(Pachapa Camp)를 이뤘다. ©이선미

도산공원에서 만나는 1912년 안창호 선생과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 노동자들 ©이선미
이후 도산은 중국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상해와 길림과 만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그동안 아내 이혜련은 생계를 책임지며 다섯 아이를 키우고,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을 맡아 독립운동의 주춧돌이 됐다.

안창호의 활동지역이 표시된 지도 아래 한 어린이가 도산의 자취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선미

도산의 아내 이혜련이 생계와 독립운동 자금에 보탬이 되도록 바느질하던 재봉틀이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이선미
도산은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관련됐다는 혐의로 3개월 일제에게 체포됐고, 1932년에는 윤봉길 의사의 폭탄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2년 6개월을 복역했다. 그리고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수감 중에 병으로 보석됐지만 이듬해 3월 경성대학부속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김성환의 ‘몸 콤플렉스’에도 등장한 도산공원 안창호의 동상 ©이선미

이혜련 여사가 망우리 묘역을 참배하던 사진도 남아 있다. ©이선미
도산 안창호의 묘역 양옆에 그의 두 모습이 붙어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활약하던 당시의 모습(1919)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모습(1937)이다.

안창호 선생과 이혜련 독립운동가의 묘역 ©이선미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이 도산도 고향과 가족을 떠나 이역만리 곳곳에서 활동했다. 그들의 역경을 몇 줄의 설명으로는 차마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도산이 우리에게 전해줬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했던 도산은 노동자들과 함께 든 독립운동가들 안에서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무실 역행’을 요청했다. ‘무실’이란 참되기를 힘쓰자는 것이며 ‘역행’이란 힘써 행하자는 것이다.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도산은 강조했다.
“아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죽어도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했던 도산은 노동자들과 함께 든 독립운동가들 안에서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무실 역행’을 요청했다. ‘무실’이란 참되기를 힘쓰자는 것이며 ‘역행’이란 힘써 행하자는 것이다.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도산은 강조했다.

3월 10일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제87주기 추모식이 있다. ©이선미
여전히 불안정한 정국에서 맞이하는 3.1절을 앞두고 도산의 가르침이 더 필요해지는 것은 배제와 폭력의 언어로 극렬한 분열이 계속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을 보며 도산은 또 한 말씀 하실 것 같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가운가? 훈훈한 기운이 없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차가운 정도가 아니라 극한 대립으로 치닫기도 하는 지금 무척이나 절실한 목소리다.
김성환 작가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 전시장소 :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 전시기간 : 2024. 12. 19. ~ 2025. 3. 30.
- 영화상영 : 3.9.까지 매주 수·일요일 오후 2, 3시(2회 연속상영)
☞ 연계강연 신청
☞ 움직임 워크숍 참여 신청
○ 문의 : 02-2124-8800
○ 전시기간 : 2024. 12. 19. ~ 2025. 3. 30.
- 영화상영 : 3.9.까지 매주 수·일요일 오후 2, 3시(2회 연속상영)
☞ 연계강연 신청
☞ 움직임 워크숍 참여 신청
○ 문의 : 02-2124-8800
도산 안창호 기념관
○ 위치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20 도산전시관
○ 운영일시 : 월~일요일 9:00~18:00
○ 휴관일 : 1월 1월, 설·추석 연휴
○ 누리집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541-1800
○ 운영일시 : 월~일요일 9:00~18:00
○ 휴관일 : 1월 1월, 설·추석 연휴
○ 누리집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541-1800
출처:서울특별시,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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