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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정보

알면 알수록 놀라워! 전통한옥 지붕에 숨겨진 비밀은?

by 여.일.정.남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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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21) 기와의 탄생과 변천사
창덕궁 기와 지붕 위에 눈이 쌓여있다.

전통한옥과 지붕의 재료

한국인이 전통적인 한옥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집은 아마도 조선 시대 배경의 사극에 나오는 기와집일 것이다. 어두운 빛깔의 기와로 지붕을 덮어 차분하고 정갈한 느낌을 내면서도 우아한 개성을 주는 오묘한 곡선으로 처마를 만들어 놓은 모습은 한국의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형태이기에 다양한 화보, 그림, 영상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궁의 수많은 건물에서부터 오래된 관광지마다 하나쯤은 있는 정자까지, 한국의 멋을 찾기 위해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에도 이렇게 기와로 지붕을 덮은 건물들이 흔히 건설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맨 처음 건설했던 건물이 기와집은 아닐 것이다. 먼 옛날 사람들이 농사를 시작하고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초기에는 집의 지붕 재료로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고 쉽게 다룰 수 있는 갈대나 지푸라기 같은 재료를 많이 사용했다.

서울의 암사동 선사 유적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옛 시대의 움집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움집은 좀 더 넓고 살기 편한 초가집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청동기 시대에 성과 도시가 건설되면서 더 크고 번듯한 건물도 건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는 한동안 지붕의 재료는 움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식물 줄기였다.

그런데 이런 초가집 지붕 재료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비가 새기 쉽기도 하고 물에 젖은 채로 오래 방치되다 보면 썩고 상하기도 쉽다. 따라서 초가집은 지속적으로 수리해 주어야만 그 안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요즘 초가집을 보존해 둔 곳에 가 보면, 몇 년에 한 번쯤은 아예 대대적으로 지붕으로 교체하고 보수하는 공사를 해 주어야 한다. 과거에는 초가집이 서민들이 값싸고 쉽게 짓는 집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런 단점 때문에 요즘에는 역으로 초가집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꽤나 비싼 집으로 취급될 지경이다.
서울 암사동 유적 박물관에 복원된 움집. 식물줄기를 지붕으로 사용했다.

비를 잘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지붕 재료

그래서 고대인들은 초가집보다 더 튼튼하고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비를 잘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지붕 재료를 찾아다녔다. 21세기에 값싸고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비에 강한 재료를 구하라고 한다면 비닐이라든가 여러 가지 플라스틱 재료를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 비닐 재료나 방수포를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물에 잘 견디는 재료는 바로 물을 담는 그릇 재질이었다. 즉, 당시 사람들이 항아리, 장독 같은 그릇 만드는 방법을 이용해서 만든 물에 잘 견디는 지붕 재료를 만들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기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기와를 만드는 방법은 항아리를 만드는 방법과 무척 비슷하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흙을 구해서 잘 반죽하고 모양을 맞춰 빚은 뒤에, 가마에 넣어 불구덩이 속에서 온도와 공기가 드나드는 것을 적절히 조절해 가며 구우면 기와를 만들 수 있다.

보통 기와는 몇 가지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고 같은 모양을 여러 장 아주 많이 만들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와 만드는 틀을 이용해서 반죽한 흙덩어리를 찍어 내는 방식으로 모양을 만든다.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이렇게 흙덩어리를 굽는 도중에 흙 속의 여러 성분들은 분해 되었다가 다시 조립되면서 새로운 물질로 변화하곤 한다. 이것이 흙덩이와 흙을 구워 만든 항아리나 질그릇이 서로 다른 느낌이 나는 이유다.
기와와 항아리는 흙으로 빚어 가마에 넣어 구워 만든다는 점이 무척 비슷하다.

만드는 법 닮은 기와와 항아리

기와나 항아리를 만들 때 그 속에서 탄생하는 성분들 중에 설명하기 좋은 것을 하나만 설명해 보자면 멀라이트(mullite)도 좋은 예다. 보통 흙 속에는 흔히 규소, 산소, 알루미늄 같은 원소들이 들어 있는데 불구덩이 속에서 규소, 산소, 알루미늄이 2:5:6의 비율로 서로 위치를 맞추어 규칙적으로 연결되면서 굳으면 독특한 돌 같은 물질이 된다. 그리고 그 물질을 멀라이트라고 한다.

멀라이트는 딱딱하고 열을 잘 견디는 재료이기 때문에 멀라이트가 잘 생겨나서 자리 잡게 되면 흙은 꽤 좋은 그릇으로 변화한다. 기와 모양으로 흙을 빚었다면 기와로도 쓰기 좋을 것이다.

기와의 무늬와 색깔

남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초창기 기와 유물은 역시 백제 시대 초기의 기와가 자주 언급되는 편이다. 백제는 역사 초기에 지금의 서울 지역에 수도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1600년 전 내지는 1800년 전쯤, 백제의 수도에 건설되었을 좋은 건물에 썼던 기와가 어디인가에 묻혀 있다가 지금 가끔 발견되는 사례가 있다.

그런 발견 기록 중에서도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그 기와에 찍어 놓은 무늬다. 흔히 한옥의 기와를 보면 기와에는 꽃무늬 같은 모양을 많이 찍어 놓는 편이고, 서울에서 발견되는 백제 기와에서도 그 비슷한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 몇몇 백제 기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주 특이한 무늬가 발견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석촌동 발견 기와 중 하나를 보면, 기와 무늬에 더하기 표시(+)와 같은 무늬가 크게 새겨져 있고, 그 주위에 동그라미와 다이아몬드 무늬 같은 것이 찍혀 있는 특이한 것이 있다.

도대체 이런 무늬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고 누가, 왜, 이런 무늬를 기와에 찍어 두었던 것일까? 학자들 중에는 이것이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유행했던 동전을 찍어서 무늬를 만드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고 동전무늬 기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백제 기와가 동전을 찍어서 무늬를 새긴 것 같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여전히 이런 무늬가 탄생한 이유는 어느 정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혹시 지금은 잊힌 알 수 없는 전설과 신화 때문에 고대 백제인들은 그 무늬가 어떤 행운을 비는 뜻이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백제시대 동전무늬 수막새와 연꽃무늬 수막새 (소장: 한성백제박물관)
옛 그릇 중에 유명한 것은 역시 고려 시대의 청자일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그릇과 기와의 뿌리가 같다 보니, 고려시대 사람들은 고려 청자를 만들던 기술로 기와를 만드는 데 도전하기도 했다. 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는 1300도 이상의 아주 높은 온도에서 빚은 흙덩어리에 특별한 약품을 발라 가면서 두 번에 걸쳐 굽는 방법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그릇이다.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두 번에 걸쳐 그릇을 만들면 유리 같은 광택이 돌고 두들기면 맑은 소리가 나는 독특한 재질로 변화하게 된다.

만약 고려 청자를 만드는 기술과 유사한 방식으로 기와를 만든다면 기와의 색깔도 청자처럼 푸르스름한 색깔이 될 텐데, 그렇게 해서 만드는 것이 바로 청기와다. 《고려사》 같은 기록에는 1157년 ‘양이정’ 같은 왕실 건물을 지으면서 청기와로 덮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려시대에 청자처럼 만든 실제 청기와도 발견되어 전시 중에 있다.
고려시대 청기와
박물관의 고려시대 청기와 같은 독특한 지붕 만드는 방법은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청기와의 전통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고 할 수는 없다. 고려시대 청기와와는 조금 다르지만, 조선 시대 건물 중에도 청기와를 덮은 건물이 남아 있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다 보면 조선의 궁중에서도 청기와를 사용하려 했던 흔적을 몇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고, 창덕궁 선정전 건물의 경우에는 지금까지도 파란 빛깔이 선명한 청기와로 덮여 있다.
창덕궁 선정전 지붕은 청기와로 덮여 있다.

흙덩어리에서 금속으로… 더 튼튼해진 기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옛 한국 건물을 덮던 기와의 재료에 대해서도 새로운 유행이 불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혹독한 비바람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재료이면서도 더 가볍고 더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재료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바로 금속 재료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철강 산업이 발달하면서 튼튼한 강철을 대량으로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인이 손에 넣기 좋은 쓰기 재료가 흙덩어리에서 금속 쪽으로 빠르게 변화했다는 느낌이다.

요즘 한옥을 수리하거나, 한옥과 비슷한 형태의 새 건물을 지으면 그 건물 지붕으로는 보통 금속 재료로 만든 기와를 사용할 때가 종종 있다. 그냥 강철로 지붕을 만든다면 비를 맞았을 때 녹슬어 약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통 각종 도금, 코팅 기술을 이용해서 강철 몸체가 잘 견딜 수 있도록 다른 금속 재료를 섞어서 씌워 놓은 재료가 인기 있는 편이다.

아연을 강철에 씌워 놓은 아연도금강판 같은 재료는 한국 기업들이 특히 잘 만드는 재료라고 할 수 있고, 강철에 아연, 알루미늄, 규소를 섞은 합금 재료를 씌워 놓은 재료도 흔히 기와지붕을 만드는 재료로 요즘에는 많이 팔리고 있다. 업계에서 ‘칼라 강판’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 금속 기와 재료도 대부분 이와 유사한 계통의 재질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침 한국은 몇몇 금속을 화학적으로 다루는 기술이 발달해 수출 산업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나라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연이 들어 있는 돌 속에서 순수한 아연만을 녹여서 뽑아내는 기술, 즉 아연 제련 기술은 한국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은 커다란 아연 광산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닌데도, 아연을 뽑아내는 바로 이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재료를 가져와서 아연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한국 아연 업체가 매년 60만 톤 이상의 아연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세계 정상급이라고 볼 수 있는 규모다.
북촌한옥마을
이렇게 생각하면 고려청자 기술이 발달한 고려시대에 청기와가 발달했던 것만큼, 21세기에 건설되는 한옥에서는 아연과 강철을 같이 활용한 금속 기와지붕이 사용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유행의 변화라는 생각도 해 본다. 물론 금속 재료 기와지붕은 전통 기와와는 워낙 다르기 때문에 완성된 지붕을 보면 조금은 낯선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아마도 개선되어야 할 점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통의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계승하는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어져서, 사용하기 편리한 좋은 재료이면서도 우아한 한옥의 멋을 잘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더 멋진 기와들이 점점 더 많이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서울특별시,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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